문헌

 

忍菴公行狀 인암공 행장

 

公諱道鼎字慶甫號忍菴晉氏南原人高麗戶部尙書謚文敬公諱含祚爲鼻祖殿中侍御史諱光仁南原君諱錫爲顯祖五世祖諱嵩文科濟州牧使高祖諱宗沃進士曾祖諱后昌訓鍊院主簿祖諱胤賢考諱聖重皆隱德不仕妣密陽朴氏以戊午七月五日生公公生而姿相粹朗性質溫良自幼己知孝友蓋天性也及長好讀書善治家於奉先追遠之道務盡誠敬見人疲癃殘疾者如癏在己盡力救護之有貧不能及時嫁娶者輒助資裝使之成就歲時伏臘每置酒設饌要鄉鄰明友連日爲樂欵曲之意溢於色辭是以皆得其觀心此蓋公實行也  庚午九月三日以疾終于寢享年六十一葬雲峯郡德村下麓酉坐配金海金氏聖鎰之女賢有德後公歿葬同原合壙生二男長德海次德河孫曾摠略干人俱不錄於乎今距公之世數百年矣風猶影像邈乎其難及然以公忍字爲名庵之義追想焉則公之平日可以三昧矣蓋忍之爲德大矣果能於是得力焉則天下萬事無所不能此張氏家法之見稱於後世者也不佞三復是字謹爲之狀以告夫凡百君子云爾謹狀

  癸酉小春上澣      嘉善大夫宮內府特進官江原觀察使  安東權益相謹狀

 

인암공의 행장

공의 휘는 도정(道鼎)이요 자는 경보(慶甫)며 호는 인암(忍庵)이니 진씨(晉氏)로서 남원인(南原人)이다. 고려 호부상서 시호 문경공 휘 함조(含祚)가 비조가 되고 전중시어사 휘 광인(光仁)과 남원군 휘 석(錫)이 현조(顯祖)가 된다. 5세조의 휘는 숭(嵩)이니 문과 급제하여 제주목사이고 고조의 휘는 종옥(宗沃)이니 진사이며 증조의 휘는 후창이니 훈련원 주부요 조의 휘는 윤현(胤賢)이며 아버님의 휘는 성중(聖重)이니 다 덕을 숨기고 벼슬을 아니하였으며 어머님은 밀양박씨이다. 무오년 7월 5일에 공이 출생하였다. 공이 출생하면서 자태가 순수하고 명랑하였고 성질이 온화하고 선량하였으며 어릴 적부터 이미 효도하고 우애하는 것을 알았으니 대개 천성이 그러한 것이다. 장성해서는 독서를 좋아하고 치가(治家)를 잘했으며 봉선추원(奉先追遠)하는 도리에 정성과 공경을 힘써 다하였다. 사람이 못된 병에 걸린 것을 보면 병이 자기 몸에 있는 듯이 힘을 다하여 구호하였으며 빈궁해서 그때에 가취(嫁娶)를 못하는 자가 있으면 문득 자장(資裝)을 도와주어 하여금 성취하게 하였고 삼복(三伏)과 납향에는 매양 술을 만들고 반찬을 장만하여 향인붕우(鄉鄰朋友)를 맞이해 가지고 연일 즐겁게 지내어 관곡한 뜻이 안색과 말씀에 넘치니 이러함으로써 다 그들의 환심을 얻었다. 이것이 대게 공의 실행이다. 경오년 9월 3일에 병환으로 침실에서 돌아가니 향년이 61이다. 운봉군 덕촌(雲峰郡德村) 아래 기슭 유좌(酉坐)에 장례 모시었고 배위 김해김씨는 성일(聖鎰)의 따님이니 어질고 덕이 있었는데 공보다 뒤에 돌아가 같은 언덕에 합광(合壙)하였다. 2남을 낳았으니 장남은 덕해(德海)요 차남은 덕하(德河)이며 손자와 증손은 총 약간인(略干人)인데 다함께 기록하지 아니한다.

아! 지금부터 공의 세상과 거리가 수백 년이나 되어 풍유(風猶:풍도(風度)와 모유(謀猶)를 말한 것)와 영상(影像)이 아득하여 알기가 어려우나 공의 인자(忍字)로 암(庵)을 이름한 의리로써 추상(追想)한다면 공의 평일에 가히 삼매(三昧:묘처(妙處)를 얻은 것)가 될 것이다. 대개 인(忍)이라는 것은 덕(德)이 크게 되는 것이니 과연 이 인에서 득력(得力)을 한다면 천하 만사에 능하지 못할 바가 없나니 이것은 장씨(張氏:당(唐)나라 장공예(張公藝)를 말함)의 가법(家法)으로 후세에서 칭도하는 것이다. 내가 이 인자(忍字)를 세 번 다시 읽으면서 삼가 행장을 찬술하여 모든 군자에게 고하노라. 삼가 장(狀)함.

  계유(癸酉) 1933년 10월 상순에

    가선대부 궁내부 특진관 강원 감찰사          

    안동 권익상(權益相)은 삼가 장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