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

 

玉井碑碣文 옥정 비갈문

 

玉井在蛟龍山下金岡洞  古有一童女適至井邊  有玉童子出遊井中  女近則輒隱不見  女潛伺井邊  及其出  執之與之  偕歸仍作夫婦  郞土着  晉氏之先也  至後孫  錫  高麗  高宗時  龍蛇亂討契丹大捷  封南原君  子孫因貫焉  事見邑誌

 

  崇禎四己卯    晉翼明  與諸宗齊會相議  修井刻石立

    諸有司  晉順興  德采  舜民  達瑞  基祿  文伯  璣象  達慶  成仁

 

  壬子四月  日      炳儀  鍾夏  改刻立

 

옥정 비갈문

옥정(玉井)은 교룡산(蛟龍山) 아래 금강동(金岡洞)에 있는데 옛날에 한 옥녀(玉女)가 샘가에 이르러보니 옥동자(玉童子)가 샘 가운데 나와서 놀고 있다가 그女가 가까이 가자 별안간 숨어서 보이지 않았다. 그女는 샘가에 몰래 숨어서 동정을 살피고 있다가 마침내 다시 나타난 동자(童子)를 맞아서 함께 돌아와 부부(夫婦)가 되어 살게 되니 이 옥동랑(玉童郞)이 진씨(晉氏)의 선조(先祖)이시다.

후손(後孫)에 이르러 진석(晉錫)께서 고려(高麗) 고종(高宗) 때 용사란(龍蛇亂)의 거란군(契丹軍)을 쳐서 크게 이기고 돌아오니 남원군(南原君)에 봉군(封君)되시고 자손(子孫)들이 관향(貫鄉)인 남원(南原)에서 세거(世居)하게 되었다. 이 사실(事實)이 남원읍지(南原邑誌)에 수록되어 있다.

기묘(己卯) 1819年에 진익명(晉翼明)이 여러 종원(宗員)과 의논하여 옥정(玉井)을 보수하면서 이 빗돌에 새겨서 세우다.

 

임자(壬子) 1912年 4月 日 병의(炳儀) 종하(鍾夏)가 다시 고쳐 새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