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

 

一烈三孝碑文 일열삼효비문

 

一片靑邱忠孝貞烈百世不泯禮義之邦惟我晉氏一烈三孝蓋其貞節善行是天禀性烈非人力强爲孝子諱聖寬字官一麗尙書僕射文敬公含祚爲始祖侍御史光仁生南原君錫爲元勳世珪組學士于蘭松堂虎老克守忠義叅判扶碩寔公七世曾祖時龍稱孝友祖泰善著文行考萬彦早卒妣慶州金氏其考廷曄有婦德奉承君子孝事舅姑不幸夫子嬰疾危劇所指灌血延壽三日年侖局之竟喪所天絶不食飮矢欲不從旣而自悟曰仰事俯育亡夫之心與其自心其心不若以亡夫心爲心能執未亡之禮喪葬致毁孝養病姑顧復遺孤端一貞淑終身守節隣里咸稱烈婦公以  景宗甲戌生孝誠出天婉愉承顔脩隨竭力及長結廬考墓三年哀號每歲厚嚮衆寡蔚悅老母凶年捐出米穀周恤窮民丁內憂又廬墓三年子千孫性善趾美事親篤孝父疾割股延壽三年孫致燁自齠齡誠孝備至胚胎前光承襲先訓親老病臥吮膿嘗冀垂淚稽宸所指割股延壽三月丁憂哀毁逾禮蓋烈婦一門孝承三世士林狀其行縣道交薦未蒙  天褒公議抑爵五世孫漢旭恐其實行久而泯沒故伐石而永爲銘親睦所厚以不文辭不獲與族弟庸謹按狀刪述而使炳祺書焉銘曰

降衷秉彝一烈三孝家風繼承心法傳效留待天定旌別淑慝樹風百世爲人柯則至行不泯片石亭亭扶植綱尙過者式刑

  歲在壬午春三月日      族孫瑩奉謹撰

 

일렬삼효의 비문

일편 청구(一片靑邱:우리나라를 청(靑)나라 함)에 충효 절의가 백세(百世)에 민멸하지 아니하고 예의동방에 오직 우리 진씨가 일렬삼효(一烈三孝)가 있었다. 대개 그 정절(貞節)과 선행(善行)은 하늘에서 타고난 성품이 그러한 것이요, 사람의 힘으로 억지로 한 것이 아니다. 효자의 휘는 성관(聖寬)이요 자는 관일(官一)이니 고려 상서복야 문경공 함조(含祚)로 시조를 하였다. 시어사 광인(光仁)이 남원군 석(錫)을 낳아 원훈(元勳)이 되어 대대로 규조(珪組:관직을 말한 것이다)가 연하였으니 학사 우란(于蘭)과 송당 호로(虎老)는 능히 충의를 지켰고 참판 부석(扶碩)은 공의 7대조이다. 증조 시룡(時龍)은 효우로 일컬었고 조부 태선(泰善)은 문행이 드러났으며 아버님 만언(萬彦)은 일찍이 졸하였고 어머님은 경주김씨인데 그 친정아버님은 정엽(廷曄)이다. 부덕이 있어 군자(君子)를 봉승하고 구고(舅姑)를 효도로 섬기더니 남편이 병에 걸려 위급하게 되어 손가락을 찍어 피를 내먹이어 3일간 수명을 연장시키었다. 운명이 국한되어 마침내 하늘같은 남편을 잃게 되니 식음(食飮)을 끊고 하종(下從)하기를 맹서하였다가 다시 스스로 깨달아 말하기를 우러러 시모를 섬기고 구부려 자식을 양육하는 것이 돌아가신 남편의 마음이니 스스로 내 마음으로 마음하는 것보다 돌아가신 남편의 마음으로 마음을 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하고 능히 미망인(未亡人)의 예(禮)를 집행하여 상장(喪葬)에 슬픔으로 몸이 훼상(毁傷)하였고 병든 시어머님을 효도로 봉양하였으며 유복의 고아를 돌아보고 어루만져 길렀다. 단일정숙(端一貞淑)하여 종신수절(終身守節)하니 마을과 이웃이 다 열부(烈婦)라고 칭도하였다. 공이 경종(景宗) 갑술년에 출생하였는데 성효가 출천(出天)하여 온화한 얼굴로 편모를 모시고 음식에 있어 힘을 다해 받들었으며 장성해서는 아버님 묘소에 여막을 짓고 3년을 애호(哀號)하였으며 매양 해마다 많은 과부들을 후하게 음식을 대접하여 노모(老母)의 마음을 기쁘게 하여 드리었다. 흉년에는 미곡(米穀)을 연출(捐出)하여 궁한 백성들을 주휼(周恤)하였고 내간상을 만나 또한 여묘 3년을 지냈다. 아들 천손(千孫)이 성품이 착하고 선인(先人)의 미덕을 이어받아 실행하여 부모 섬기기를 두터운 효도로 하여 아버지 병환에 허벅지살을 베어 달여 드리어 수명이 3년을 연장하였다. 손자 치엽(致燁)이 이를 갈 나이로부터 성효가 지극하였다. 전인(前人)의 빛을 안고 선훈(先訓)을 승습(承襲)하여 어버이 늙으시어 병으로 누우시니 고름을 빨고 똥을 맛보았고 머리를 조아려 하늘에 빌었으며 손가락을 찍고 다리를 베어 3월간 수명을 연장하였고 상(喪)을 만나 애훼 (哀毁)하기를 예에 지나치게 하였다. 대개 열부(烈婦)의 일문(一門)과 효승(孝承)의 삼세(三世)를 사람들이 그 행적에 대하여 장계(狀啓)를 올렸고 현(縣)과 도(道)에서 서로 추천하였으나 천포(天褒:임군의 표창)를 입지 못하여 공의(公議)가 억울하게 여기었다. 5세손 한욱(漢旭)이 그 실행이 오래가면 민멸될까 두려워하여 돌을 다듬어 갈명(碣銘)을 구하거늘 친목이 두터운 처지로 글을 못한다고 사양하지 못하고 족제(族弟) 용(庸)과 더불어 삼가 가장을 상고하여 산술(刪述)하고 병기(炳祺)로 하여금 쓰게 한다. 명(銘)하여 가로되

 

일문(一門)에 병이(秉彝)의 성품을 내리어 일렬(一烈) 삼효(三孝)가 나오셔서

가풍(家風)을 계승하고 심법(心法)을 세세 상전하여 내려 오셨네

임군의 정론(定論)으로 정포(旌褒)를 내리시어 숙특(淑慝)의 분별을 기다렸지

백세(百世)에 교풍(敎風)을 수립하여 사람들의 가칙(柯則)이 되어 오시었도다.

지행(至行)이 민멸되지 아니하여 비석이 정정(亭亭)하게 서있구나

강상(綱常)을 부식하셨으니 이 곳을 지나는 자 공경하여 법 받으리소세

 

  임오(1942)년 춘3월에  족손 영봉(瑩奉)은 삼가 찬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