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

 

永慕齋上樑文 영모재 상량문

 

烟雲澹蕩呈姸如見張天冀之古洞草木鮮新結蔚乃稱甄富家之思亭瞻慕之額繼述之誠將占公侯何羨陶剌史之牛眠特揭孝友欲做周內韓之烏哺伏惟修軒先君文庵後裔敬齋曾孫重封之墟曾行籩豆之禮會同之所必敬桑梓之邱經營於心上縱云財乏而力綿軒豁於目前怳若神輸而鬼役二三員許詢謀僉同三四朔間巨事告訖克終如始雖舊維新巍巍簾阿奮迅翼翼之鳥落落杗楶儼伏饕餮之獰綺疏銅鋪侈於樸橑左篆右圖煥乎粉壁履霜露而愴心近誦小戴之禮感林泉而寓目遠仰后山之文情誼彌篤感桑梓於千秋省掃不疏養松檜於百代懷龜公之美規遵韋氏之遺法或値雨雪疊床宜作芬苾之所惟有賓朋稠坐可行飮射之儀應謂先祖之餘蔭豈曰後昆之殫誠燕岳初月仰想尹和靖之幽情龍湫旋風恍留謝宗道之嘉遁進呈六偉短律助擧百尺脩樑抛樑東鳶戾于天曉日紅植杖行人多指點名區窈窕似壼中抛樑西十里平沙一曲溪踈雨濛濛朝暮裏垂楊百株墓門低抛樑南龍山一面破蒼嵐悠悠往事今無問鳥沒荒坮磊石藍拋樑北五雲  何處有皇極願年皷腹耕由人帝力何有自不識抛樑上七政煌煌下垂蒙陽春一到夕薰風自樂羣生摠涵養抛樑下田夫短笠暮朝荷誰知遠擧淸眞流窮達何求自任他伏願上樑之後吉星感應厚風不斬曰忠信曰孝弟樂我天而自怡有勤實有光輝與此山而俱重

  歲在      七世孫鍾成謹撰

 

영모재 상양문

연운(煙雲)이 맑게 움직이어 아름다움을 드러내니 장천기(張天冀)의 고동(古洞)을 보는 것 같고

초목(草木)이 선명하고 새로이 울창하게 맺었으니 견부가(甄富家)의 사정(思亭)이라고 칭도하리라

첨모(瞻慕)하는 편액(扁額)에서는

계술(繼述)하는 정성이 보이네

장차 공후(公侯)를 얻는 것은 어찌 도자사(陶剌史:진(晋)나라의 도간(陶侃)을 말한 것)의 우면지지(牛眠之地:길지(吉地)를 말한 것)를 부러워 하리요

특별히 효우(孝友)를 걸은 것은 주내한(周內韓)의 오포(烏哺:까마귀 반포(返哺)를 말한 것)를 모방하고자 한 것이로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수헌 선군(修軒先君)은 문암(文庵)의 후예요 경재(敬齋)의 증손이시었지

중봉(重封:거듭 봉작한 것)하던 옛 터에 일찍이 변두지례(邊豆之禮:제사 지내는 것)를 행하였고

회동(會同)하는 장소에서는 반드시 상재지구(桑梓之邱:묘소가 있는 언덕)를 공경하였네

마음으로 경영할 적에 비록 재물은 궁핍하고 힘은 면약하였으나

눈앞에 헌활(軒豁:크고 활달한 모양)하여졌으니 황연이 신(神)이 옮겨주고 귀(鬼)가 역사를 한 것 같도다.

이삼원(二三員)에게 물으니 순모(詢謀)가 다 동일하였고

삼사삭(三四朔)사이에 거사(巨事)가 공력을 마치었구나

능히 일을 마치기를 시작할 때와 같았으니

비록 구가(舊家)의 재사이나 오직 규모가 새로웠도다

외외(巍巍:높은 모양)한 염아(簾阿:처마 끝을 말한 것)는 분발하여 나래를 활짝 편 새 같고

낙낙(落落)한 망절(杗楶:들보와 아기기동)은 엄연히 엎드리어 탐내어 먹는 개 같구나

비단으로 바른 창문과 구리로 만든 문고리는 박요(樸橑:떡갈나무와 평고대나무)보다 사치스럽고

왼쪽에는 전서(篆書)요 오른편에는 그림이 흰 벽에 환하게 밝게 보이누나

상로(霜露)를 밟으니 처창한 마음으로 가까이 소대(小戴:예기편명(禮記篇名))의 예를 외우고 임천(林泉)에 감동하여 눈을 들고 멀리 후산(后山:송(宋)나라 진사도(陳師道)니 시(詩)에 능하였음)의 글을 우러러 보았네

정의가 더욱 두터워 천추에 상재(桑梓:여러 대 조상의 무덤이 있는 것)를 느끼었고

성소(省掃)를 소활하게 하지 아니하여 百대에 송회(松檜)를 기르리라.

원공(袁公)이 아름다운 규범을 생각하고 위씨(韋氏)의 끼친 법을 준행하리로다

혹 비와 눈 내리는 날을 만나면 상(床)을 괴어 제사 지내는 곳으로 할 것이고

오직 손과 벗이 있어 많이 앉으면 가히 술 마시고 활 쓰는 예의를 행할 것이로세

응당히 선조의 남은 음덕이라고 이를 것이니

어찌 후손들이 정성을 다한 탓이라고 하리요

연악(燕岳) 초승달에 윤화정(尹和靖:송(宋)나라 군순(君淳)의 호)의 그윽한 정을 우러러 생각하고

용추(龍湫) 도는 바람에 사종도(謝宗道:송(宋)나라 사람)의 가둔(嘉遁:아름다운 은거(隱居))을 황연(怳然)히 머물게 하리로다.

육위(六偉)의 짜른 시율(詩律)을 받히어 6尺의 긴 대들보를 드는데 도우련다

대들보의 동쪽을 던져보니

제비는 하늘에 나르는데 밝는 해가 붉게 뜨는구나

지팡이 꽂고 길가는 사람이 많이 지적하기를

이름난 이 구역의 요조(窈窕)함은 병속 같다고 하는도다.

대들보의 서쪽을 던져보니

10리 평탄한 모래에 한 갈래 구부러진 냇물이 흐르네

성긴 비가 몽몽(濛濛:자욱한 모양)하게 아침저녁으로 내리는 중에

수양버들 백 그루가 묘문(墓門)에 나즉이 푸르렀구나

들보의 남쪽으로 던져보니

용산(龍山)의 일면(一面)에 푸른 안개가 걷히는구나

유유(悠悠)히 지나간 일은 지금 물을 곳이 없는데

새는 거치른 누대로 들어가고 뇌석(磊石)에는 푸른빛만 남았도다

대들보의 북쪽을 던져보니

오색구름 어느 곳에 황극(皇極)이 있었던가

해마다 배를 두드리며 밭을 갈아 농사 짓는 사람은

임금의 힘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누나

들보의 위로 던져보니

칠정(七政)이 황황(煌煌)히 빛나 아래로 형상(形象)이 드리웠네

양춘(陽春)이 한번 이르니 저녁에 훈풍이 도는구나

군생(羣生)이 다 함양(涵養)되는 것을 스스로 즐거워하는도다.

대들보의 아래로 던져보니

전부(田夫)가 짜른 사립을 저녁이나 아침이나 항상 메고 있네

누가 알으리 멀리 숨어사는 청진(淸眞)한 종류가

궁달(窮達)을 어찌 구하랴 스스로 자연에 맡기리

엎드려 원하기를 들보를 올린 뒤에 길성(吉星)이 감응하고 후풍(厚風)이 없어지지 말아 충신하고 효제하여 나의 하늘을 즐거워하고 스스로 기뻐할 것이며 근실하고 광휘(光輝)하여 이 산(山)과 더불어 함께 중(重)하게 여기소서

    7세손 종성(鍾成)은 삼가 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