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

 

殿中侍御史公壇碑文 전중시어사공 단비문

 

남원진씨(南原晉氏)는 고려조(高麗朝)에서 명성(名聲)을 떨친 가문(家門)이며 남원(南原)의 고반(古班)이다.

시조(始祖) 함조공(含祚公)께서는 고려(高麗) 현종조(顯宗朝)에서 좌우복야(左右僕射)를 역임한 원로훈신(元老勳臣)이시며, 그 후손(後孫)이신 公의 휘(諱)는 광인(光仁)이요 호(號)는 경덕재(敬德齋)이시다. 천성(天性)이 청덕(淸德)하고 외유내강(外柔內剛)하며 매사(每事)에 정면습성(精勉習成)하셨다. 항상 비례물시(非禮勿視), 물청(勿聽) 물언(勿言) 물동(勿動)의 사물(四勿)을 실천하고 1日 3省으로 악(惡)을 물리치고 선(善)을 행하며 숙야(夙夜)로 학문(學問)을 열심히 닦아 문장(文章)과 덕업(德業)이 당세(當世)의 유종(儒宗)이셨다.

고려(高麗) 명종조(明宗朝)에서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를 지내면서 나라의 기강(紀綱)을 바로잡는데 앞장서 제도(諸道)의 찰방사(察訪使)가 계송(械送)한 장리(贓吏) 35人을 핵주(劾奏)하였으나 권세도(權勢徒)들의 농간(弄奸)으로 사면(赦免)되고, 당대(當代)의 세도가(勢道家) 정중부(鄭仲夫)의 가노(家奴)가 금법(禁法)을 범(犯)하자 公과 송저(宋詝)가 범행(犯行)을 국문할 제 정중부(鄭仲夫)의 횡포(橫暴)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공부원외랑(工部員外郞)으로 전직(轉職)되셨다. 권세(權勢)를 천단하고 국기(國紀)를 문란(紊亂)시킨 세도(勢徒)들의 전횡(專橫)과 횡포(橫暴)를 막지 못함을 통한(痛恨)하며 관직(官職)을 버리고 안빈낙도(安貧樂道)하시면서 우국(憂國)으로 일관하셨다.

오랜 세월(歲月)이 지나면서 公의 묘소(墓所)를 실전(失傳)하고 향화(香火)를 받들지 못함을 한(恨)스럽게 여겨 온 후손(後孫)들이 갑인(甲寅) 1974年 3月 3日 옥정 성역(玉井聖域)의 손좌원(巽坐原)에 단(壇)을 모으고 향사(享祀)를 봉행(奉行)하여 경모(敬慕)의 정(情)을 펴게 된 것이다.

옛 문헌(文獻)과 고려사(高麗史) 세가(世家) 卷 第19 第128 열전(列傳) 卷 第41의 기록(記錄)에 의해 이와 같이 약술(略述)하고 바라건대 公의 우국충정(憂國忠貞)은 천추(千秋)에 빛날 것이며 그 음덕(蔭德)은 후손(後孫)에게 미쳐 선지(先志)를 이을 인재(人材)가 속출하여 나라일을 바로잡고 세대(世代)는 길이길이 융성(隆盛)하며 번영(繁榮)하게 될 것이다.

  갑술(甲戌) 1994年 6月 日

    성균관 부관장(成均館副館長) 박홍구(朴泓九) 근술(謹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