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거 연유(世居緣由)와 세거지 변천(世居地變遷)

용성지(龍城誌 : 南原誌)에 의하면 남원(南原) 본래(本來)의 토족(土族)으로 진(晉) 진(陳) 방(房) 태(太) 형(邢) 전(全) 복(卜) 등 7성씨(姓氏)가 있으며 그 가운데서도 우리 진씨(晉氏)가 맨 먼저 남원(南原)에 정착(定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진씨(晉氏)는 서기 9세기(世紀) 말엽 남원(南原)의 금강동(金岡洞) 옥정(玉井)에서 발상(發祥)하였으므로 기원지(起源地)가 남원(南原)인데다 시조(始祖) 함조(含祚)께서도 그 무렵 남원(南原)에서 강탄(降誕)하셨으므로 우리 진씨(晉氏)가 남원(南原)에서 세거(世居)하기 시작한 것은 9세기 말엽부터 그 연유(緣由)가 되었다.

 

그 후 고려(高麗) 고종(高宗) 5년에 현조(顯祖) 석(錫)께서 남원군(南原君)에 봉군(封君)되시어 남원(南原)에 정착(定着)하시면서 본격적(本格的)인 세거 연유(世居緣由)가 된 것으로 1218년부터 기원지(起源地)이자 관향(貫鄕)인 남원(南原)을 계속 세거지(世居地)로 지켜오고 있으며 후손(後孫)에 이르러 점차 전국 각지(全國各地)로 분포(分布)되어 산거(散居)하고 있는데, 주요세거지(主要世居地) 변천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판서공파(判書公派) : 1590년대에 14世 진련(晉璉)께서 전북 임실읍(全北任實邑)을 세거지(世居地)로 삼아 천거(遷居)하시어 후손(後孫)들이 임실읍(任實邑)에서 집성촌(集成村)을 이루고 있으며 임실군(任實郡) 일대(一帶)에서 세거(世居)하고 있다.

 

첨정공파(僉正公派) : 1590년대에 14世 진도정(晉道鼎)께서 남원시 운봉읍 덕산리(南原市雲峰邑德山里)로 세천하셨고 1750년대에 19世 진대유(晉大有)께서 덕산리(德山里)에서 남원시 식정동(南原市植亭洞)으로 천거하시어 후손(後孫)들이 집성촌(集成村)을 이루며 세거(世居)하고 있다.

 

감무공파(監務公派) : 남원시 주생면 지당리(南原市周生面池塘里)에서 집성촌(集成村)을 이루고 있으며 1650년대에 16世 진무경(晉武卿)께서 전남 곡성군 옥과면 내동리(全南谷城郡玉果面內洞里)로 1700년대에 17世 진석주(晉碩周)께서 임실군 덕치면 구담동(任實郡德峙面九潭洞)으로 각각(各各) 세천하여 후손(後孫)들이 집성촌(集成村)을 이루며 세거(世居)하고 있다.

 

학사공파(學士公派) : 9世 진호로(晉虎老)께서 1420년에 남원시 대강면 방동리(南原市帶江面芳洞里)를 세거지(世居地)로 개촌(開村)하여 후손(後孫)들이 집성촌(集成村)을 이루고 있으며 1700년대에 16世 진지동(晉智宗)께서 장수읍(長水邑)으로 세천하신 후 후손(後孫)들이 장수(長水)와 전남 순천시(全南順天市) 경남 함양(慶南咸陽) 등지에서 세거(世居)하고 있다.